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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지명타자
KIA 타이거즈의 우투좌타 외야수.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진북초에 입학하여 전주동중-전주고를 거쳐서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이후 2002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에 지명을 받아 삼성에 입단한다.
당시에는 포수였으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1군에서 6경기에 출장해 7타수 2안타를 기록하였다.
타격에서는 2군에서 타율 2위를 기록하는 등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수비, 그중에서도 송구 부분의 문제로 2군에 내려갔고, 결국 송구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2005년 방출당했다.
원래 상무에 입단할 계획이었으나 실패하여 선수 생활에 위기가 다가왔으나 그 해 경찰청이 창단하며 경찰청에 입단. 타격을 살리기 위해 당시 감독이었던 김용철 감독의 권유에 따라 외야수로 전향하였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후 경찰청의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1년차에는 타격 1위, 홈런 공동 1위를, 2년차에는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에서 1위를 달성하며 7관왕을 달성한다.

경찰청 복무가 끝나갈 때 즈음, 김용철 감독은 최형우가 갈 곳이 없을까봐 연고팀인 KIA 타이거즈에 영입 제의를 하였다. KIA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당시 감독이 서정환이 짤리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 뒤로도 SK 와이번스, LG 트윈스에서도 영입하려고 하였으나, 수비 문제 때문에 영입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갈 곳이 없는 최형우... 인듯 했으나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사장이었던 김응용 사장의 눈에 들어 삼성과 다시 계약하여 다시 삼성에 입단한다.
2008년에 삼성에 다시 입단한 최형우는 노쇠화가 심각하였던 삼성 야수진의 세대교체를 무사히 이뤄내면서 4번타자로 자리 잡았고, 팀내 홈런 1위(19홈런)과 타점 1위(71타점)을 기록하며 당시 최고령 신인왕에 오른다. (현재는 키움의 신재영이 2016년에 경신한 상태)

최종 성적은 126 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6, 안타 106, 홈런 19 (시즌 5위), 타점 71, 득점 68, 도루 3, 출루율 0.364, 장타율 0.487을 기록하였다.